天安からアンニョン

日々の思いや韓流情報などをエッセイ風に書きます。韓国からの発信です。

正しいことばが生の限界を克服する原動力_ その3(この項終わり)


ドイツのビスクマルクが若きころ、友人といっしょに狩りに行った。
途中友達が泥沼にはまり抜け出せなくなって死の淵にきたとき、
ビスクマルクは銃口を友人に向け「もし君を助けようとするなら二人とも死ぬだろうし、放っておけば君は無限の苦労をして死ぬ。
だから君の苦労をなくしてやるために君を殺してやる。死後に再び会おうじゃないか」と言い、引き金を引こうとした。
すると泥沼にはまって出てこれなかった友人が「打つな、打つな」とわめきながら
死に物狂いでその泥沼から這い上がってきたという逸話がある。

以上簡単に述べたように、適切な言葉を使う習慣は肯定的な生活習慣を生み出し、
肯定的な生活習慣は生活の限界を克服する原動力となり、
これらのものは総合的に満足を知る幸せな家庭および隣人を作り上げるのである。
これらすべては自分から出発するものであることを知り、じっくりと休むことなく努力する人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

あとわずかとなった2013年を締めくくりながら、一部の人々は満足できる一年となり
一部の人々は失敗の一年だったと自責の念にかられるかもしれない。
満足している人は新年にも喜び多き一年となるようより一層の努力をし、
失敗して自分を責める人々は、来る新年には必ずや成功し満足と幸せを享受できるよう適切な言葉と肯定的な思考で限界を克服しよう。
「幸せ」を語る人々はそのために共に努力してゆく美しい新年を想像し、美しい世界が広がっていくことを心から願う次第だ。
(ベ・ジョンデ 詩人・蔚山中部警察署)

[한국어 원문]
독일의 비스크 마르크가 젊어서 자기 친구와 사냥을 갔다가 친구가 그만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게 되었는데 이때 비스크 마르크는 총으로 친구를 겨누며 “만약에 너를 건지려 하다가는 둘 다 죽게 될 것이고 그냥 두면 너는 무한한 고생을 할 것이니 자네의 고생을 들어 주기 위해서 자네를 죽여주마. 사후에 다시 만나세”라고 하며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니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한 친구가 “쏘지 마 제발 쏘지 마”라고 하며 죽을 힘을 다해 그 수렁에서 헤어 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이상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과 같이 올바른 말을 사용하는 습관은 긍정적인 생활습관을 낳고 긍정적인 생활습관은 삶의 한계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며 이러한 것들이 종합적으로 만족할 줄 아는 행복한 가정과 내 이웃을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무던히 쉼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13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사람은 만족하는 한 해가 되었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실패하였다고 자책도 할 것이다. 만족하는 사람은 오는 새해도 만족하는 한 해가 되기를 더욱 노력하고 실패하고 자책하는 사람들은 다가오는 새해에는 꼭 성공하여 만족이란 행복을 가질 수 있도록 올바른 말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한계를 극복하며,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위하여 다 함께 노력하는 아름다운 새해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배종대 시인·울산중부경찰서)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6655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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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じめ _ 学生エッセイ0011

韓国の若者、大学生がどんな文章を書くのか。
学生エッセイシリーズは、
わたしの教え子らが書いた文章(主にエッセイ)を紹介するコーナーです。
今回はその11回目でihyさんの作品。


「まじめ」
韓国と日本はとても似ている部分が多い国である。
もちろん違うことも多いが、二つの国が完全に違うとは思わない時が多い。
よく、韓国から日本に行った留学生や、逆に日本から韓国に来た留学生の多数は
「日本と韓国はとても似ていて、驚いた。」と言うことが多い。
韓国と日本は言語と性格がとても似ていて、両民族ともに共通してまじめなことで有名だ。
これを韓国語では

「ブジロンハダ(부지런하다)」、「グンミョンハダ(근면하다)」、
「ソンシルハダ(성실하다)」あるいは「チャクシルハダ(착실하다)」

などの多くの単語・言葉で表現できるが、
日本語では普通「まじめだ」の単語だけで表現する。

これは韓国語が、同じ意味や状況を表わす場合、表現の多様性があるためである。

韓国では他人を誉める時に、
「ヂョ サラムン メウブジロンハゴグンミョンソンシルハミョ、チャクシルハダ」
(저 사람은 매우 부지런하고 근면성실하며, 착실하다.)

と言う長い話を日本では「あの人はまじめです」
だけで表現するということである。

勿論、実生活には韓国でこのように長い表現は使わないかも知れない。
韓国での「ブジロンハダ(부지런하다)」などは、行動がとても勤勉で仕事を後回しにしないで
懸命に頑張るの意味だ。

一方日本語の「まじめだ」は、上に述べた意味と共にとっても心中で本気にまたは僞りなく、
などの韓国語とは多少違った多彩な意味を持っているものと考える。

筆者の解説
論旨が多少あちこち飛んでいますよね。
言いたいことは、韓国語の場合は同じような意味を表わす語でもいろいろな単語がある。
一方日本語のほうは、一つの単語で言うことが多いが、
その一つは多彩な意味をもっているもののようである、
こう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


[마지메다 (まじめだ)]
 한국과 일본은 매우 닮은 점이 많은 나라이다. 물론 다른 점 역시 많으나, 두 나라가 완전하게 다르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한국에서 일본으로 간 유학생이나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유학생의 다수는 “일본과 한국은 매우 닮아있어 놀랍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일본은 언어와 생활방식이 매우 흡사하며 두 민족 모두 공통적으로 근면성실하기로 매우 유명하다. 그러나 이를 한국어로는 ‘부지런하다’, ‘근면하다’, ‘성실하다’ 혹은 ‘착실하다’ 등 많은 단어와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일본어로는 대체적으로 ‘마지메다(まじめだ)’라는 단어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이는 한국어가 표현하기에 많은 단어와 유사하지만 상황에 따라 뜻은 같지만 다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의 다양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타인을 칭찬할 때에 “저 사람은 매우 부지런하고 근면성실하며, 착실하다.”라는 긴 말을 일본에서는 “아노 히토와 마지메데스.(あの 人は まじめです。)”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생활에서는 한국에서도 저렇게 길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단어들 사이에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많은 표현 중 선택하여 사용하며, 그 사이에는 세한 차이가 있다. 일본의 ‘마지메다(まじめだ)’ 역시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이 달라진다.  한국에서의 ‘부지런하다’ 등등은 행동이 매우 바지런하고 일을 미루지 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 일본의 ‘마지메다(まじめだ)’는  위의 내용의 뜻과 더불어 매우 신중하며 진심으로 혹은 거짓이 없다 등의 한국과는 달리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正しいことばが生の限界を克服する原動力_ その2


まず、適切なことばを使用する習慣が必要である。
ことばは、普段の習慣を他人が自動的に相手を評価するものである。
これは、人の脳細胞の98%がことばの支配を受けているという学者らの話から
容易に知ることができる。

なぜなら、ことばは脳細胞を刺激して行動を誘発する能力があるからである。
人の舌は船のキーのようで、船が小さいキーによって方向を決めていくように、
人の舌は体の小さな器官として彼の体を支配し、
その人自身の満足および不満を判断する考えを作成するからである。
したがって満足ある生のためには、否定的で退廃的なことばは捨て、
柔らかく丁寧なことば、肯定的で礼儀正しいことばを使うべきである。

第二に、肯定的な生活習慣が必要である。
不満いっぱいの人々を見ると、「お前のせいだ」ということから始めて、
「だめだ」、「できない」、「時間の無駄だ」、「やったってどうせだめだ」などといった、
自分のことを棚に上げ、世界のすべてのことはオレがやれば
一点の不具合もなくできるんだという錯覚に陥っている姿をよく見ることができる。
こうした気持ちでは、満足できる人生には決してならない。
今は満足してはいないが、「これもオレのせいさ」と考えてさらに熱心に努力し、
「できる」という肯定的な気持ちに転換して希望を持つという肯定的な生活習慣が必要である。

第三に、生の限界を設定しないようにしよう。
カーネギーは言った。
「ない」「失った」という限界のあることばを言わなければ成功できると。
人は自分の自画像をどのように描くかということが重要である。
つまり、自分の肖像画を子供の頃からどのように描くかということである。
自分の自画像を正しく描けば、小さなことにも満足できる人になり、
そうでなければ不満に満ちた人になるだろう。
大体のところ、小さなことであれ大きなことであれ、
結果に対して自分である程度の満足と改善する習慣を持ち、
また自分の限界を設定しないという共通点を持っているもののようだ。
その例は、私たちの隣人や職場にいくらでも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

[한국어 원문]
우선, 올바른 말을 사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말은 평소의 습관을 타인이 자동으로 상대를 평가하게 한다. 이는 사람의 뇌 세포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는 학자들의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말은 뇌 세포를 자극하여 행동을 유발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혀는 배의 키와 같은데 배가 작은 키에 의해 좌우로 방향을 정해 가는 것과 같이 사람의 혀는 작은 몸의 지체로서 그 몸을 지배하게 되고 그 사람 스스로 만족과 불만족을 판단하는 생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족하는 삶을 위해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언어를 버리고 부드럽고 공손한 언어, 긍정적이고 예의 바른 말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긍정적인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불만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너 때문이야’라는 것으로 시작하여‘안 된다’, ‘시간 낭비야’,‘해봐야 안돼’라는 등 자신에 대한 돌아봄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이 하면 어느 것 하나 그르침 없이 잘 될 것이라는 착각에 살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음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삶이 된다. 지금은 만족하지 못한다 하나 ‘나 때문이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면서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는 긍정적인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셋째, 삶의 한계를 설정하지 말자. 카네기는 말하기를‘없다’‘잃었다’라는 한계가 있는 말을 하지 않아야 성공한다고 하였다. 사람은 자기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기의 초상화를 어릴 적부터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이다. 자기 자화상을 성공적으로 그리면 작은 일이라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불만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어느 정도의 만족과 개선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그 예는 우리 이웃과 직장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先生、質問あります_ 学生エッセイ0010

韓国の若者、大学生がどんな文章を書くのか。
学生エッセイシリーズは、わたしの教え子らが書いた文章(主にエッセイ)を
紹介するコーナーです。

今回はその10回目でkhjさんの作品。
論旨がちょっと曖昧になってますね。

社長とか先生という語は、韓国語ではニム(님)つまり「様」をつけて言うのだけれど、
日本語ではそのまま「社長」「先生」と言うという点がいいたいことのようです。
よくこれをもって日本語は「相対敬語」、韓国語は「絶対敬語」と言われます。
韓国語はどんな場合でも常に敬意の対象となる存在は敬語をもって話すということですね。
ここの部分は、日本語と韓国語の大きな違いの一つになります。
非常に重要な相違点というわけです。それでは。


「先生、質問あります。」
日本語の単語を習っていた頃、このせりふを聞いて私は聞き違えたと思った。
日本の番組やドラマ、映画では「社長、部長、先生」がよく出てくる。

「社長、おねがいします」。

こんな言葉を韓国で言ったら首になるかもしれない。
韓国では絶対的に敬語を使う。「社長様、部長様、先生様」と。
日本語で「様、さん」にあたる<二ム>(님)を使う。

韓国で母と話す時、「お母さん、先生様が入院をなさいました。」
こんなふうに母の前でも先生を高める。
日本では他人の立場に対して敬語を使う。「お母さん、先生入院したよ。」

また、インターネットによくあることだけど、日本では取引先と電話する時、
相手が社長お願いしますという時、こちらは、「佐藤は、おりません。」と話す。
でも韓国では「社長様、いらっしゃいません。」と話す。

日本語で自分の社長を呼ぶ時、そのまま「社長」と呼ぶのは、
すでに社長と言う単語の中にステータスが付与されるからである。
これが立場の差異だが、日本では自分の側の人を他人に対しては下げる文化がある。

同じような例で、家族の呼び方がある。
自分の家族を相手に話す時に「母、父」と下げて言い、
相手の家族を相手に話す時には「あなたのお父さんはどう?」と高めて話す。
私が私の家族だけでいる時には「お母さん、お父さん」と呼ぶ。
日本では<他人を大切に対する>と言う言葉があるが、
自分を下げすぎて他人の気持ちや立場まで気にするかのように見える。

韓国でもこの言葉と同じような言葉があるが、
でも他人をもっと気にかけるのは日本のほうだと思う。
結局、同じように見えても、お互いに文化や環境の違いがかなりあるということだと思う。


筆者の解説:タイトルの「先生、質問があります」という表現は、日本人には何の変哲もない正しい表現であるが、韓国語の立場から見ると、これはエライことなのである。
「先生、質問があります」などと言ったら韓国語だったらビンタが飛んできてもおかしくはない。先生を非常にばかにした言い方なのである。正しく言うには「先生様、質問があります」のようになるわけだ。

[韓國語 原文]
<센세, 시쯔몬가아리마스.> 일본어의 경어를 배울 쯤, 이 대사를 듣고 나는 내가 잘못들을 줄 알았다. 일본의 방송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는 <샤쵸, 부쵸, 센세>듣기 쉽다. <샤쵸, 오네가이시마스..> 이런 말을 한국에서 했었더라면 해고당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경어를 사용한다. <샤쵸사마, 부쵸사마, 센세사마> 일본어로 <사마, 상>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로 <님>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엄마와 대화를 할 때 <오카상, 센세 뉴잉나사리마시타.> 이렇게 엄마 앞에서도 선생님을 높인다. 일본에서는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서 경어를 사용한다. <오카상, 센세 뉴잉시타.> 또, 인터넷에 자주 나오는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거래처와 전화를 할 때, 상대가 사장님을 찾을 때,
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샤쵸사마, 이랏샤이마셍.> 라고 말한다. 일본어로 나의 사장을 부를 때에도, 그대로 <샤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사장이라는 단어 속에 직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슷한 예로, 가족의 호칭이 있다. 나의 가족을 상대에게 말할 때에는 <하하, 치치>라고 낮추어 부르고, 상대의 가족을 상대에게 말할 때에는 <아나타노 오토상와 도우?>라고 높여 부른다. 나의 가족끼리 말할 때에는 <오토상, 오카상>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타인을 소중하게 대하라> 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낮추어 타인의 기분이나 입장까지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그런 말과 비슷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인을 좀 더 신경 쓰는 쪽은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똑 같아 보여도 서로서로 문화나 환경의 차이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正しいことばが生の限界を克服する原動力_ その1


[경상일보](慶尙日報)という新聞におもしろい寄稿文がありまして、掲載します。
日本語のあとに韓国語も載せますので、参考にしてみてください。
3回に分けて掲載したいと思います。翻訳は筆者です。
タイトルは「正しいことばが生の限界を克服する原動力である」。
それではどうぞ。


「正しいことばが生の限界を克服する原動力である」

人は生きていく。誰でもすべての分野で成功する人生、すなわち満足ある人生を生きていくことを願う。満足できる生活を送っているのか、それとも敗北的な生活あるいは不十分な生活を送っているのかは、自分の能力と才能そして与えられた環境の良し悪しにかかっているのではなく、自分の心の持ち方にかかっている。

心と心が現われる行為は、再び新たな心を生じさせる循環によって判断されるものなので、他人ではなくあくまで「自分」の主観的な考えで、自分自身を満足の部類にあるいは不満の部類に代入する結果でしかない。つまり、成功した人生なのかそれとも失敗した人生なのか(つまり勝ち組か負け組か)という問題は、一般的な生活の中において見れば、コインの両面のようなものであり、心の持ち次第なのである。

満足・不満足というのは、自分の内面において判断される場合がほとんどである。しかし、このような内面は自分も知らないうちに周り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ているのが現実である。小さくは家族や職場など身の周りの親戚知人たちに、範囲を広げれば国や世界に影響を及ぼしているのではないのか?それでは、満足することを知る人間になるためには、どのように生きるべきか。これに関して狭い紙面の中だが、筆者が重要だと考える3つのポイントをあげてみたい。

[한국어 원문]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는 삶, 즉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아니면 패배적인 삶, 불만족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재주 그리고 주어진 환경의 좋고 나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먹기에 있다하겠다.

마음과 마음이 드러나는 행위는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순환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므로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자신을 만족의 부류에 혹은 불만족의 부류에 자신 스스로 대입하는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성공한 삶이냐 아니면 실패한 삶이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생활에서 본다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므로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만족과 불만족이란 자체는 자신의 내면에서 판단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내면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작게는 가족과 직장 등 주변의 친인척들에게, 범위를 넓히면 나라와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좁은 지면상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3가지 정도를 말해 보고자 한다.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6655 (경상일보)

欠席_ 学生エッセイ0009

韓国の若者、大学生がどんな文章を書くのか。
学生エッセイシリーズは、わたしの教え子らが書いた文章(主にエッセイ)を紹介するコーナーです。

今回はその9回目でjugさんさんの作品。
「けっせき」という語について書いてます。
この発音が韓国語ではまた独特の意味を持つものなんですね。



<欠席>

ときまさに中学校3年生。

学校の授業で日本語を初めて習ったときのことである。

うちの学校は韓国人の先生と日本人の先生が一緒に授業をしたけど、

授業の初めと終わりのあいさつはいつも日本人の先生がやった。


授業を始める前にいつも「出席をとります」と言ってから出席をとった。

出席をとってから欠席の生徒があったら確認のためもう一度、「欠席を確認します」と言った。


一人が笑い始めると、クラスにいたみんなが大きく笑った。

先生は訳がわからなくて慌てた。


私たちが笑った理由は

「欠席」の発音が韓国のヨク(罵りことば、きたないことば。ケッセキは子犬を表わす悪い言葉)と似ているためだった。


「欠席」の発音に笑うのは卒業まで続いた。

今も日本語を勉強しながら、「欠席」という単語があると、つい笑ってしまう。

今は発音が慣れてヨクとして思い浮かぶんじゃないけど、あの時が思い出されて笑ってしまうのだ。



<결석>

때는 바야흐로 중학교 3학년. 학교 수업체재로 일본어를 처음 배웠을 때이다. 우리 학교는 한국인 선생님과 일본인 선생님이 함께 수업을 했는데, 처음과 끝인사는 항상 일본인 선생님이 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하고 출석을 불렀다. 출석을 다 부르고 나서 결석한 사람이 있으면 확인 차 다시 한 번 ‘결석을 확인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 명이 웃기 시작하자 반에 있던 모든 학생이 크게 웃었다. 선생님은 영문을 모르고 당황했다. 우리가 웃었던 이유는 ‘결석’의 발음이 한국의 욕(강아지의 나쁜 말)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결석’의 발음에 웃는 일은 졸업 때까지 계속 되었다. 지금도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결석’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웃게 된다. 지금은 발음이 익숙해져 욕이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예전 생각이 나서 웃게 된다.



筆者の解説;

ケッセキという発音について。
これはケッセキよりも「ケセッキ」という音のほうがより韓国語のヨクに近いものとなります。

意味そのものは「子犬という語を悪くいうことば」なのですが、
ニュアンスとしてはかなりの罵りの意を含んだ語になります。

「あのイヌ野郎」ぐらいでは収まらないほどのインパクトのある語です。

「イセッキ」という語も同じです。
日本人の中には「井関」さんという方もいらっしゃるわけですが、
この「イセキ」をちょっと強めて「ッ」をいれて「イセッキ」とやるともうアカンです。


ビデ

わたしの愛読しているブログの一つに

「もうすぐ北風が強くなる」(http://bator.blog14.fc2.com/)さんがあります。

12月22日の記事に「トイレと洗面台のリフォーム」と題して自宅でのビデについて

書いてありました。(楽しく読ませてもらいました)

で、韓国の事情はどうかと思い、

ちょっとネイバー(naver.com)で調べてみました。

わが家はビデは使ってません。(一般の水洗式トイレ^^)

韓国の場合は、定価がだいたい20万ウォンくらいみたいですね。

13万ウォン(13000円)から40万ウォン(39000)くらいまであるようです。

20万ウォンというと、日本円で19500円ほどですかね。

やっぱ韓国は安いですかね。

韓国はレンタルが盛んだそうで、月9500ウォン(930円)ほどで

レンタルしている家がかなりあるそうです。

そうじのケアなんかもやってくれるということで。

メーカーもいろいろあって、

デリムケアというところとノビタというところを比較しているサイトがありました。

デリムのほうがいいという結論でした。

また、購入するといろいろのサービスがなくなってしまうですが、

レンタルだと月々の掃除やフィルタ交換など無償でやってくれたりもするようです。

わが家は一般の水洗式なので、ビデには関心がなかったのですが、

北風さんのアップを見てちょっと調べたら、

おもしろい結果が出て、楽しかったです。

 

ガラケ-人気

ガラケーとは?
わたしは韓国在住25年になり、
日本での最先端の流行語はトンと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った。

ガラケ-???
ガラパゴスケータイの略だという。オドロキモモノキ。初めて見た。

で、このガラケ-つまり従来型のケータイがまだまだ人気なんだという。
かなり安心した。

わたしは、ずっとこのケータを使っていて(韓国内での話だが)、
スマートフォンに買い換える気はない。

同僚教授は、いつスマホに買い換えるんだといつも詰め寄る。
でもわたしは買う気はない。
「オレは買わないんだ」
と言っても、なかなかそのまま受け止めてくれない。(それは向うの勝手だが)

わたしのケータ利用法はだいたい1224Keita.jpg 

1.電話。
2.文字メール
3.写真(動画含む)。
4.予定表。
5.アラーム。
6.時間確認(ストップウォッチ使用含む)。
7.メモ。
8.電子辞書(たまに)。
9.計算機(たまに)。
10.ライト(暗いところ見る)。

こうあげてみると結構重宝に使っていることに驚いた。

種明かしをすると、
「わたしのケータ利用法はだいたい3つ」とはじめには書いた。

書いてたら、次々と浮かんできて、結局10個になってしまった。
でも、これだけ(いやこれ以上の機能があるが)の機能があるケータだ。
これ以上、何が必要だろうか。

スマホはいつまでたっても不必要だとわたしには思える。

カカオトークだけは、ちょっとやってみたいと思うが、
それも1、2回やれば、飽きてくるんじゃないのかな?

ガラケ-よ、これからもますます進化して
ガラケ-だけでおいらたちがずっと暮らしていけるよう、
がんばってくれよ。な。


2013年生まれの赤ちゃんの名前

名前の統計は日本独自のものかもしれません。
こちら韓国では、今年度の名前統計みたいなものはあの有名なネイバーで探しても
出てきませんでした。
日本は毎年、それもいろいろの会社で統計を取ってますよね。

株式会社ベネッセコーポレーションでは、2013年に生まれた赤ちゃん30,372人を対象に
恒例の名前調査を行い、
男の子の名前は「大翔」(昨年2位/主な読み「ひろと」)が2年ぶりに1位、
女の子の名前は「結菜」(昨年3位/主な読み「ゆいな」「ゆうな」)が、
2007年のトップ10入り以来初めての1位となった、とありました。

イーウェルという会社の「はっぴーママ.com」
(http://www.happy-mama.com/)にて調査した結果、
もっとも多かった名前は、

男の子が「悠真 (ゆうま、はるま)」で47票。以下、
「湊(みなと、そう)」の42票、
「蓮(れん)」の35票、
「大翔(ひろと、やまと、はると)」の33票、
「陽翔(はると、ひなと)の31票。

女の子の1位は「葵(あおい)」の54票。
以下「結愛(ゆあ、ゆな、ゆうあ)」37票、
「結菜(ゆいな、ゆうな、ゆな)」33票、
「結衣(ゆい)」「陽菜(ひな、はるな)」の29票となりました。

このように調べる会社によって順位が違ってますが、これは当然かもしれませんね。

さらに「はっぴーママ.com」によりますと、
漢字では2008年以降「太」と「愛」が1位をキープ。
名前の最初の1文字に限定すると、男の子は1位から順に「悠」「陽」「大」、
女の子は「美」「結」「心」となりました。

男の子9位の「健」は、昨年21位から順位を上げました。

また、読みについては、男女共に「ゆ」から始まる名前が1位。ということで、
」という発音からはじまる名前がいちばん多いんですね。
おもしろいです。

わたしが教えている大学生の名前を思い浮かべると、

男子では、「ヒョンソプ」とか「ジュノ」とか「ドンゴン」なんてのが多いみたいです。
女子では、「ヒョンヂョン」「ミンヂョン」「ウンヂョン」というように、「なになにヂョン」という
名前が圧倒的に多いです。
韓国の場合、男子より女子の名前に流行性が強く感じられますね。

参考「はっぴーママ.com」(http://www.happy-mama.com/04_spc/namae/04_38001.html)。
参考サイト:( 
http://news.goo.ne.jp/article/benesse/life/benesse-10978.html)

◎リンクはご一報いただければご自由にどうぞ。ブログのすべての版権は制作者に属します。

一生の終わりに残るもの

わたしが愛読しているメルマガの一つに
[痛快!サルもできるツボ療法]というのがあります。

その 2013/12/20(No.448)号に、こんなことばがありました。

短かいなかに、なんとも言えぬ深みがあって
思わずうなってしまいました。 


                  一生の終わりに残るものは、

         われわれが集めたものではなく、

         われわれが与えたものである。


なんと深いことばでしょうか。味わっていただけたらうれしいです。

自分はどれだけ与える生活をしているだろうか。
しばし黙考状態に陥り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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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フィール

treenamu

Author:treenamu
韓国在住の日本人で、山歩きやサッカー、リフティングなどが好きです。小説・随筆なども書いてます。鴨長明、ヘッセ、バルザック、モーム、チャンドラーなどが好きです。スローライフがモットー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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