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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安からアンニョン

日々の思いや韓流情報などをエッセイ風に書きます。韓国からの発信です。

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4)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11

釜山サムライさんのエッセイ。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4をお届けします。

サックスの思い出 (パート4)。

私はお酒を好きで、練習につけ舞台につけ、一人で若干のお酒をのみながら
演奏したものだ。いわば、飲酒演奏。。
私のこういう振る舞いを、音楽を楽しむ方々は共感されてくれるかな。。

サックスを手に入れてかれこれ、9年となった。
この頃は一週間に2~3回は口につける。
このくらいの練習でもやらないと、ふっと怠け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になる。

あるプロの言ったことが思い浮かぶ。
"一日やらねば、本人が感じる。二日やらねば、仲間が感じる。
三日やらねば、観客が感じるものであるー"
名言となるこの言葉を、上のそらではなく、心の奥深く銘じておいた。

あ~~もう9年が経ったなんて。。私が思うにも少ない時間ではない。
9年という時間の中ではいろんなことも多かった。
しかしながら、その中でも忘れられない、これからも決して頭から消すことのできない出来事がある。
悲しい中にも、一方では、私がサックスを今までやってきたやり甲斐のあることだった。

今年、桜のつぼみが花を咲かせようとする3月初めのことだ。
私の高校同窓であるKについての話だ。
Kを含めて数名の友が長年の間、付き合い、たびたび夫婦づれの集まりもやってきたものだった。
こういう友だちの中でももっとも馬が合う彼だった。
昨年、2017年8月、膵臓癌という診断をうけ, 闘病生活を続けたがついに旅立った。
さほど酒ずきではないが、集まりで歌を上手に歌った彼だっだ。

診断をうけてから、初めから自分の家ではなく、遠く離れた他の地方、
カンウォンド(江原道)の方へ行って闘病生活をし始めた。
それゆえ、お見舞いに行くのも簡単なことではなかった。
日頃、健康だった彼なのですぐ治おると思っていた。
しかし、時間が経つにつれて病状はだんだん悪くなつてきた。

結局は、家へ戻ってきて、近くの病院のホスピス病棟に入院した。
こういう状況で、Kの見舞いに行くことになった。。
死ぬ1週日前の日曜日、2回目の見舞いに友らと行ったときだった。
友らに囲まれたKが、私をしばし見つめながら力のない声で言う。

"おい~さむらい~! 一つだけ頼んでもいいか。。"

死を目前にしたのを感じたからか。。
Kは自分の得意の歌をはじめ、何曲かをサックスで聞きたいとのことだった。
"あ~~そうかい、聞きたい曲があれば、何でもいいよ。。"
Kからこういう頼みを聞いた瞬間、はっと気づいた。
今までこの友らの前で、演奏をやったことが一度もなかったことに。

Kをベッドに残して俺たちは病室を出た。見送りに出たKの婦人にそっと聞いてみた。
"いつごろ来たらいいですか"と。
"主人の様子をみると今度の日曜日のこのくらいの時間(午後1時)に、来ていただければいいかと。。"
彼女の表情は暗い。

3月3日、土曜日だった。朝9時ころ、Kの婦人から電話がかかってきた。
"侍さん~~時間をちょっと繰り上げてもらえませんか。"
電話を切ると側で聞いていた妻が、はやく仕度せよと促す。
出発の仕度に急いでいたところ、また電話がかかてくる。
"申し訳ないんですがもっと早く来てもらえませんか。。"
泣き声のまじったKの婦人の音声が受話器から流れてくる。
 
この電話を受けるがはやいか、妻と一緒にあたふたと車に乗りこんだ。
病院までは1時間ぐらいの距離。11時ころ着いた。
ところが、前にいた一般病室とは違った特別病室だ。
Kは身内に取り囲まれ、ベッドに横たわったまま息が弾んでいた。
病室に入いる私を見たKの婦人は彼に言い出した。
"あなた~侍さんが今来たんですよ。どうか目をあけてよ。。今まで友が来ると
よく頑張ってくれていたじゃないですか。。"
そう言いながら早くサックスの音を主人に聞かせてと私に頼んだ。
病室の前のソファーでKが一番好んで歌ってきた曲を演奏した。
私も涙が流れてくる。
曲が終わらないうちに鳴き声が聞こえる。
入ってみると、計器板の心臓拍動数がだんだん落ちていっていた。
間もなく拍動数の表わす印が、すっかり消えてしまった。
11時30分ころのことだった。

葬儀の時、
Kの婦人が私に聞かせてくれた話はこういったものだった。
"その日、主人からこういうことを言われました。
意識が消えかかっている主人の声でしたが、私は確かに聞きました。
"自分のために、わざわざここまで来る友のためにも、先に目を閉じてはいけないんだ。。
そして、友に頼んでいたこともあるんじゃないか。。
あなたも分かっているように、亡き親父に前々から聞き習った、
この歌だけは友から、ぜひサックスで聞かせてもらいたい。。"
そういうことを言った後、急に意識が微か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
"しかしながら、主人は意識が薄れていきながらも、きっとサックスの音を聞いた
はずだと私は固く信じています"

こういった話を言いついでやってから、背を向けている婦人の横顔から
言葉では表せない何か安らかな気配が見られる。

私の胸が熱くなった。
"ありがとう~友よ~ 私との約束を守るために、あの辛い時間を堪えていたということか。。"
"そうだね~、私もお前との約束を守ることができてよかったよ~~"

葬式を終えて戻っていく道。道端の桜のツボミが、何か私に声をかけそうに見える。
"あなたという人、不出来な人間だったけど、いざという時に何かをやったね。
よくやりましたよね~~!!"
まさに、そうであった。
この度の出来事によって、私が感じたことがある。

今に至るまで覚えていなかった大きな喜びであった。                                              ー終りー


*参考まで。Kさんが好んで歌った歌は パク・ジェラン(박재란) の ニム(님)である。
(一名、「格子なき監獄」としてもっと知られている)
この歌は、私の十八番の曲であり、韓国の人々の愛唱曲でもある。
1964年に発表された曲で、いまでも4~50代以後の人から変わらず愛されている。
歌詞が刻みこまれた歌碑は、慶尚北道、蔚山市 温陽邑 大雲山自然休養林
の入り口に立てられている。

나는 술을 즐기는 편이다.
혼자 연습하든,무대에 서든, 약간의 술을 마셔가며 연주를 하곤 했다. 그야말로 음주연주..
음악을 즐기는 분들은 나의 이러한 행동을 공감해 주시려나..

섹소폰을 시작한지 벌써 9년이 지났다.
요즘은 1주일에 2~ 3번 정도 분다.
이 정도도 하지 않고 있으면 문득, 게을러져 있지 않는가 하고 느낄 때면
어느 –프로-의 말이 생각난다.
- 하루를 쉬면 본인이 알고, 이틀을 쉬면 동료가 알고, 삼일을 쉬면 관객이 안다 -
명언인 이 말을 건성으로 듣지 않고 나의 마음속 깊이 새겨 놓았다.
아~~벌써, 9년이라니..지금 생각해도 적은 시간이 아니다.
9년이란 시간속에는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다.
그렇지만,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앞으로도 결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사건?이 있다.
슬픈 사연이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섹소폰을 지금까지 해온 보람이 있었던 일이다.

올해, 벚나무의 꽃봉우리가 꽃잎을 피우려 하던 3월초순때의 일이다.
나의 고고동창인 K에 대한 이야기이다.
K 를 포함해 몇 명의 친구들이 오랜 기간동안 사귀어 왔고,때로는 부부동반으로
모이곤 했다.
이런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맞는 친구였다.
작년인 2017년 8월 췌장암이란 진단을 받아 투병생활을 계속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다지 술은 좋아 하지 않았지만 모임때 노래를 멋지게 부르곤 했던 그였다.

진단을 받고 나서 처음부터 자신의 집이 아닌 멀리 떨어진 타지방, 강원도쪽으로
가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문에 “병문안”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건강했던 그였기에 조만간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병세는 점점 나쁘게 되어 갔다.

결국은 집으로 돌아와 집근처의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K의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죽기 1주일전인 일요일, 2번째 병문안으로 친구들과 갔을 때였다.
친구들에게 둘러 쌓인 K가 나를 잠깐 주시하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 사무라이 부탁할게 하나있는데 괜찮을까 ?
너가 허락해 준다면,. 그렇게 해 주면 좋겠는데..“

죽음을 앞에 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K 는 자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비롯해
몇곡을 섹소폰으로 듣고 싶다는 것이다.
“ 아~~그래~~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좋네..”
K 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자마자 문득“지금까지 우리 친구들 앞에서 연주한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K를 남겨 두고 우리들은 병실을 나왔다.
배웅하러 나온 K의 부인에게 살짝 물어 보았다.
“언제쯤 오면 되겠습니까?”
라는 나의 말에“남편의 상태를 보니 다음주 일요일, 이 시간정도(오후 1시경)에
와 주시면 될 것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걱정어린 표정이 가득하다.

3월3일, 토요일이었다.
아침 9시경 K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사무라이씨, 시간을 조금 당겨서 와 주시겠습니까?..”
전화를 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안사람이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한다.
출발준비에 서두루고 있을 때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죄송하지만 좀 더 빨리 와 주실수 있을까요?...”
울음섞인 부인의 음성이 수화기에서 들려 온다.

이 전화를 받자마자 안사람과 함께 허겁지겁 차에 올라 탔다.
병원까지 거리는 약 1시간, 11시경 도착했다.
그런데 전에 있었던 일반병실과는 다른 특별한 병실이었다.
K는 가족,친지들에 둘러 쌓여 침대에 길게 누운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 가자 K의 부인이 그에게 말한다.
“여보,사무라이씨가 오셨어요. 어서 눈을 떠 봐요...
지금까지 친구가 온다고 잘 견디어 주셨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빨리 섹소폰소리를 남편에게 들려 주라고 나에게 부탁한다.
병실앞 소파에서 K가 제일 좋아했던 곡을 연주했다.
나도 눈물이 흐른다,
연주가 마치기도 전에 울음소리가 들려 온다.
병실에 들어 가 보니 계기판에 보이는 심장박동수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잠시후, 박동수를 나타 내는 그 표시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11시30분경의 일이었다.

장례식때, K의 부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날 남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는 남편의 목소리였지만 나는 똑똑히 들었읍니다.“
- “나를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오는 친구를 위해서도 먼저 눈을 감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부탁한 것도 있지 않느냐.. 당신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오래 전에 들어 배웠던 이 노래만큼은 꼭 친구에게서 섹소폰으로 듣고 싶다.“
그런 말을 한후 남편의 의식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남편은 의식이 사라지면서도 틀림없이 섹소폰소리를 들었을 것으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을 전해준 뒤 뒤돌아 서는 부인의 옆모습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편안한 기색이 엿보인다.

나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고맙다, 친구야~~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힘든 시간을 견디었느냐..
그래, 나도 너와의 약속을 지킬수 있어서 기쁘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다.
길가의 벚나무 꽃봉우리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당신이란 사람,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어도 정작 누군가에게 필요할 때
뭔가를 했네요,,잘 했습니다...“
정말로 그랬었다.
이번 일로 인해 느낀 것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기쁨이었다.              -끝-

>참고로 K가 즐겨 불렀던 노래는  –박재란의 님- 이다.
일명“창살없는 감옥”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나의 18번이기도 하며, 한국인들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1964년 발표되었던 곡으로, 지금도 4~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가사가 새겨진 비석은 경상북도 울산시 온양읍 대운산 자연휴양림입구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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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3)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10


釜山サムライさんのエッセイ。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3をお届けします。


サックスの思い出 (パート3)。

冬が終わらないうちにAさんとの練習は終わりを告げた。
Aさんはほぼ1年ぶりに新しいプロジェクトを受注したという(事業家である)。
やむを得なく下山することになり、私はひとりで続けた。
時は冬であったので狭い自動車の中で、サックスをやるよりほかなかった。
車の中を照らす日差しが消えてしまうと、
また日差しのよいところへ移動する。
まるで太陽を追っ掛けていきながら顔の方向をかえるヒマワリのように光が差すところへ
転々と動く始末だった。

春になってからは山だけでなくあちこちに移っていった。
車の外でやるので、雨の日は橋の下で、風の強い日は風を避けられる、どこかの場所でやった。
同好会にはいるとこういう苦労はしなくてもすむ。
だが、そこには行かなかった。
練習はそっちのけにして揃って酒ばっかり飲むのが火を見るよりも明らかだからだ。
振りかえれば雨につけ、雪につけ一日、10時間ずつやったものだった。
私は、その当時、これっといった仕事がなかったので、こういうことができたのかも知れない。
"そう、腕のよいAさんが 一日、7時間ずつ2年間やったといったっけ~!
だったら、俺は10時間ずつ3年間だけやってみよう。。"
こういった思いを固めたからには,一日でも休んではならないという妙な
覚悟みたいなものができたものだ。

かくして、春を迎え、冬を送り出すこと3回。
一日も練習を欠かさなかったのは無論のこと。
ほどんどの人々は信じられないことと思われるはずだが、これは事実である。
3年間の練習の結果はどうであれ、自らの約束を守り抜いたということが誇らしかったものだ。

一方、その時には、山の下に住んでいたAさんはその間、元の家から遠く
離れたところへ引っ越ししたという。
"山へ来るには仕事が忙しいし、そこまで距離も遠い。練習はうまくいっていますか~"
たまに電話でAさんの声だけ聞いていたものであった。

"せっかくの休みの日ですよ~"といいながら、お酒を持って訪れてきたAさんと
久しぶりに話し合った。

Aさんは山から下りて行った以後、今までサックスは口につけることは全くなかったという。
"一曲、聞かせてもらえますか~" 彼に頼まれた曲を演奏した。
    
演奏が終わるころ、彼の口元に笑みがこぼれる。
"やっぱり短い時間だったけど、共に練習したやり甲斐がありましたね~~"
前に書き記したBさんには、あれほどつれないことをよくも言ってのけた彼が、私をほめるなんて。。。"
とにかく、気持ちはよかった。

例の山で練習していたところ、ある車が私の近くに止った。
60代半ばのおとなしそうな男が車から降りる。
自分はグァンアンリ(廣安里)浜辺の舞台で公演するチームのリーダーだと言いながら名刺を取出す。
この道を通りかかるたびに、サックスの音が聞こえてくるので、車の中で何回も私を見守り、演奏も聞いたという。
彼の話は、いっしょに活動するのはいかがでしょうかということであった。
"へえ~~舞台で演奏をするなんて、、この人の目には私がそれくらいの腕が備わっていたと見えていたってことか"

Aさんに電話をかけ、こういう事情を伝えたところ、電話の向こうからげらげらという笑いが聞こえてくる。
"サムライさん~先日、山であなたの演奏を聞いたじゃないですか。
十分ですよ。もう、下山してもよろしいのではないかと。。
思うぞんぶん働いてください。。"という。
なんと、あの厳しい師から認められたことがどれほど嬉しかったことか。

こうして、演奏チームに参加することになった。
4月から10月末まで、毎週,土曜日ごとに3時間くらいの舞台だった。
初めは自分たちの選んだ曲をやったが、2年目からは観客の申請曲を主として
やることになった。
だが、こういうことも一時の楽しみであった。
時が経つにつれ嫌気がさしてくる。
そもそも毎週,土曜日ごとにやるということが無理だった。
時々、個人的の事情で演奏の日に抜けることも、すまないことだし。。
音楽をやるって、自ら楽しもうとやったのに、ストレスを受けながらやるべき
理由があるのかいな。

チームのリーダーに了解を得て、2年ほどやってきたこのチームを去った。
けれども、こういう活動が負担もあったけど、一方では、多くの人の前でやってきたと
いうことが十分に実戦経験を踏んだものともなった。


섹소폰의 추억 (3)                                    パート3。韓国語。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A씨와의 연습은 끝이 났다.
A씨는 약 1년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하산하게 되었고 나는 혼자서 계속 연습헀다.
때는겨울이었기 때문에 좁은 자동차안에서 연습할 수 밖에 없었다.
차안을 비추는 햇살이 사라지면 다시 햇살이 잘 드는 곳으로 이동한다.
마치 태양을 쫓아 가며 방향을 바꾸는 해바라기처럼 햇빛이 비추는 곳으로
이쪽저쪽 움직이는 처지였다.

봄이 되고 부터는 산뿐만이 아니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차밖에서 연습하기 때문에 비오는 날에는 다리밑에서, 바람이 센 날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어딘가의 장소였다.
동호회에 들어가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지 않았다.
연습은 뒷전이고 모여서 술만 마실 것이 불을 보듯 뻔하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10시간씩 연습했다.
나는 그 당시에 특별한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솜씨좋은 A씨가 하루 7시간씩 2년을 했다고 했지...
그럼 나는 10시간씩 3년만 해 보자..“
이렇게 생각을 굳힌 후부터는 하루도 연습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묘한
각오같은 것이 생겼다.

이렇게 하여 봄을 맞이하고 겨울을 보낸 것이 3번이나 지났다.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3년간의 연습결과가 어찌되었든 스스로 약속을 지켜 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한편,그때는 산밑에 살았던 A씨는 원래 살았던 곳에서 상당히 먼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산에 오기에는 업무도 바쁘고, 거기까지는 거리도 멉니다..
연습은 잘하고 있습니까?“
가끔씩 A씨의 목소리를 전화로 들을 뿐이었다.

“모처럼의 휴식입니다~~ 라며 술을 가지고 찿아 온 A씨와 오랬만에 얘기했다.
A씨는 산에서 내려간 이후 색소폰을 전혀 불지 않았다고 한다.
“한곡 들려 주세요~”그가 부탁한 곡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갈 무렵 그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앞에 기술한 B씨에게는 그토록 무정한 소리를 했던 A씨가 나를 칭찬하다니..“
어쨌던 기분은 좋았다.

매일 연습하던 산(황령산)에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웬 차가 내 가까이에 선다.
60대 중반의 점잖게 생긴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자신은 광안리,해변무대에서 공연하는 팀의 –리더-라고 말하며 명함을 꺼낸다.
이 길을 지날 때 마다 음악소리가 들려서 차안에서 몇 번이나 나를 지켜
보았고 연주도 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같이 공연활동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예~에~~??  무대에서 연주를 하다니...
이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그정도 실력을 갖추었다고 보는 것인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했더니 전화기 저편에서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 온다.
“일전에 산에서 사무라이씨의 연주를 들었지 않았습니까.
충분합니다.
이제 하산해도 좋을 것같습니다...마음껏 실력을 발휘하세요..“
웬걸~~!!이 지독한 선생에게서 인정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기뻣던지...

이렇게 하여 연주팀에 참가하게 되었다.
4월부터 10월말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3시간정도의 무대였다.
처음에는 내가 선택한 곡을 연주하였으나, 2년째 부터는 관객의 신청곡위주로 연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잠깐의 즐거움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실증이 나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때로는 개인 사정으로 토요일날 빠지는 것도 미안한 일이고 해서..
음악을 스스로 즐기기 위해 하였는데,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
팀의 –리더-에게 양해를 구하고 2년정도 해 왔던 이 팀을 떠났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부담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많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해왔던 것이
충분한 연주경험을 쌓게 된 것이었다.


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2)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9

釜山サムライさんの久しぶりのエッセイ。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2をお届けします。

(パート2)
かくして、運指法から習ってからびっしり鍛えられるうちに冬がやってきた。
手の指が冷えて外で練習するのは無理なのでやむなくボンゴ車に入って毎日練習した。
朝10時ころ山に登る時、おやつにするとパンを持って行ったものだ。

夕方になって装備を取りまとめて、片付けようと車内を見回す。
朝、買ってきたパンの袋が手つかずのままである。こういうことは茶飯事であった。
この二人、どれほど夢中になっていたかは皆さんの想像に。。

何日が経ったころ、二人、初めて酒を飲むことがあった。
酒が回るとAさんにこう言った。
「一日7時間くらい練習をやったってのは嘘ではなかったですね~ 本当に驚きました」。
すると、Aさんのいうには
「僕もみずから激しく練習してきたと思っていたけど、あなたこそ僕より粘りづよい人であることが分かりましたよ~。僕よりもっとすごい人がいるというのを今になって知りました」。という。

Aさんはサックス以外の唯一な趣味といったら海づりである。波が散る磯で釣りをする姿をセルフで撮った写真をみせる。
酔いが回るとAさんは
「僕は他人との付き合いが苦手なもので何だってひとりでやるんです。幼いころ両親が旅立って、自分は一人ぼっちになったせいか、朗らかではない性格で生きてきました」。
そのためか、口が重い。人の前で自慢は決してしない。ひいては自分をみずから厳しく戒める方であるという。

私がサックスを習ったばかりのころ、こういう性格を彼がみせた出来事があった。
共に練習中のある日、だれかが音を聞きつけてやっってきた。自分(Bさん)もサックスをやっているという。
サックスを手にとって2年ほどになると言いつつ車からサックスを持ち出してくる。
こうして何日か過ぎた。3人で酒を飲んでいたところ、AさんがBさんに向かって真顔になって言う。
この二人は、歳もほぼ同じであった。
「あなたは音楽を止めたほうがあなたのためにもよいことと思います。2年もやったという実力がこれしかできないなんて。拍子もろくに取れない人が音楽をやるなんてむりです」と。

Bさんの顔色をうかがうこともなくきっぱりと割りきって言ってのけるのだった。
いや~~酷いことをいうもんだ。それもよく知らない人に。。

けれども、私の師であるAさんの言ったことは正しいことであった。。。。というのは、
何日間か3人ともにいたので私もそう思っていたからであった。

自分は上手だと思って素人の私にあらゆるスケールばっかり誇らしげにやってみせていたBさんが
Aさんからこんな酷い話を目の前で聞かされて、どれほど恨めしかったことか。
恨めしさのあまりなのか。。涙まで流していた。
言うまでもなく、その後からはBさんは二度と顔を出さなかった。

では、こういう厳しいAさんの下で、私はどうなったでしょうか。。
(パート2)ここまで

한국어(パート2)
이렇게 해서 운지법부터 배우고, 열심히 연습하는 동안 겨울이 찿아 왔습니다.
손가락이 시려워 밖에서의 연습은 무리. 어쩔수 없이 봉고차안에 들어 와
매일 연습했다.
아침 10시경, 산에 오를 때 간식으로 빵을 가지고 가곤 했다.
저녁이 되어 장비를 정리하고 차안을 둘러 본다.
아침에 사 갔던 빵봉지가 손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이 두사람, 얼마나 연습에 열중했는가는 여러분의 상상에..

얼마간의 날들이 지났을 때쯤, 둘이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기운이 돌자 나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 7시간씩 연습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러자 A씨 말은 ”나도 스스로 독하게 연습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신이야 말로 나보다 근성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라고 한다.

A씨는 섹소폰이외의 취미라면 바다낚시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셀프로 찍은 사진을
보여 준다.
취기가 더 오르자 A씨는 나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서툴러서 무엇을 하든
혼자 합니다. 어릴 때 양친이 돌아 가셔서 자신이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어
밝지 못한 성격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 때문일까?  그는 입이 무겁다.사람들 앞에서 자기자랑은 결코 하지 않는다.
더욱이나 자신을 스스로 엄격하게 다스리는 편이라고 한다.

내가 섹소폰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성격의 그가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같이 연습중인 어느 날, 누군가가 소리를 듣고 왔다. 자신도(B씨) 섹소폰을
하고 있다고,,
섹소폰을 손에 잡은지 2년됐다고 말하면서 차에서 악기를 꺼내 온다.
그리하여 몇일이 지났을까. 3명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A씨는 B씨를 향해
정색을 한 얼굴로 말한다.
이 2사람의 나이는 거의 비슷했다.
“B씨~~! 당신은 음악을 그만 두는 것이 당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년이나 했다는 실력이 그것 밖에 되지 않습니까~~!
박자도 제대로 못맞추는 사람이 무슨 음악을 한다는 말입니까~!!
B씨의 표정에도 신경쓰지 않고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한다.

으와~~~!!! 심한 말을 하네.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하지만, A씨가 말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라고 하는 것은, 몇일간 3명이 같이 연습을 하였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상당한 실력자라고 생각하여,초보인 나에게 온갖 스케일을
자랑스럽게 보여 줬던 B씨가 A씨에게서 이런 험한 말을 눈앞에서 듣고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서러운 나머지,,,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B씨는 두번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런 엄격한 A씨 지도하에 있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パート2)

ーサックスの思い出ー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8

ーサックスの思い出ー
(パート1)

あれが中学校か高校の時であったかは今ははっきり覚えていないけど。。
テレビのショー番組でサックスという楽器をもって演奏するのを初めてみた。
ラジオで流れてくるサックスの音は聞いたことはあつたけど、画面で直接見たのは初めてではなかったかと思う。
「サックスって、他の楽器と違って素敵な音を出す楽器だな」。
いつになったらあれを習えるかという漠然とした思いばっかりしていた。
いわば、当時は"高嶺の花"であった。
その当時、サックスというものは価格が相当に高いものだったので
一般の楽器商店には売っていなかったと思う。

その後30年もすぎた2009年、秋のある日であった。
妻と一緒に家からちょっと離れた荒嶺山いうところへ初めて行ってみた。
私はあまり山へ行かないので荒嶺山という名前だけは知っていたけど、ここ釜山ではかなり知られた山なんだそうだ。
山の入り口からアスファルト道路の両側はすべて一種類の木だけで植えられている。
桜の木である。
桜の咲き盛りの4月ともなると大勢の人が花見に来る。
3年前、旅立った母親とともにこの時期になると毎年、花見に行ったものである。
頂上付近の道路にそって行くと"桜の道"という立て札が見られる。

山に登ると9合目あたりのところから約1キロくらい平らな道が広がる。
この辺から見下ろせば、高層ビルが林立すしているヘウンデの町、対馬の方に広がっている爽快な海。
そして釜山の名物の一つであるグァンアンデギョ(廣安大橋)が一望に見渡せる。
頂上であってもあまり高くないので軽装で山行(サンヘン:山歩きのこと)する人々が目に入る。

車から降りて爽やかな空気を吸い込みながら風景を眺めていたところであった。
さほど遠くもないところから音楽が聞こえてくる。
いや~~~それは他ならぬサックスの音!。。
30年前の憧れがふと脳裏をかすめる。
妻を一人にして、私ひとりでそっと音がするところへ行ってみた。
ボンゴ車のそばでなんと粗末な身なりの男(Aさん)が伴奏にあわせてサックスを演奏している。
私は少し離れたところでじっと音楽をきいていた。
何曲かつづけてやっている。
演奏力は相当なものであった。

サックスを下ろして石に腰をかけ、たばこに火をつけていた彼のほうに足を向けた。
拍手とともに
「いや~すごい腕前ですね~。サックスをやりはじめて、もうだいぶ経つのでしょう」。

すると、Aさんは照れくさい笑いを浮かべながら、
「いいえ、2年前から始めたばかりです」
という答えを聞いて、腰が抜けるくらい驚いた。

2年ほどの短い時間でこれほど見事な演奏ができるのか。

「冗談ですよね~。いくら熱心に練習したといっても、こ
れほどまで上手になるなんてあり得ないことと思いますが」。。

Aさんは40代前半の男で、会社員ではなく自分の技術をもって事業をしているので
サックスを練習する時間は十分であるという。

「本当です。その代わりに一日、7時間ぐらいの練習をほぼ2年間やりつづけました。
自分なりには一所懸命にやったと思います。この場所で一人で」。。

今、私が振り替えれば当時2年になったという彼の実力は、10年も過ぎた人より優れていたといっても
過言ではないぼど並々ならないものであった。

ギターも弾いていると言っていたのだけれど、そんなこともあるのか、
人並みはずれた音楽的感覚があるのではかいかと思った。

タバコの火が消えていくころ、ふと私は頼んだ。
「(あはたに)サックスを教えてもらえますか」と。
Aさんが笑いながら平気で答えた。
「私はいつでもここにいるから楽器さえ求めたらいつでもけっこうです。教えてあげるのは勿論、礼金も遠慮します」。

翌日、そこへ行ったら彼がいた。
車から楽器を持ち出してくる私をみて、Aさんがぼんやりとした表情で微動だにせずじっと立っている。
「本当に買って来たんですか~~!!」
驚いた気配がありありと見える。

「牛の角も一気に抜け。腕のよい先生とすばらしい景色に恵まれた学びの場所。こんな機会がまたとありましょうか」との僕の言葉を聞き、
あきれ果てたといった顔をしながらタバコに火をつける。

「あなたのような人は初めてみた。2年間ここで数多くの人に会って
同じ話を繰り返してきたが、誰一人、あなたのような振る舞いはしなかったんです。
僕もインターネットを見ながら do、re、miから習ってきましたが、
誰かの助力なしに独学するなんてまさにいばらの道でした。
だが、あなたのような人には私が知っているすべてを教えてあげます」。         (パート1)
                                            ※牛の角も一気に抜け:物事は熱意のあるうちに一気にやれ、の意。(鉄は熱いうちに打て)。



섹소폰의 추억 (パート1)
그때가 중학교때 였는지,고등학교때 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텔레비젼 쇼프로에서 섹소폰이란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섹소폰 소리는 들었던 적은 있어도 텔레비전화면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섹소폰이라는 것이 다른 악기와 다르게 멋진 소리를 내는악기구나..”
언제쯤 되면 섹소폰을 배울수 있을까,,하고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섹소폰이란 악기는 가격이 상당히 비싼 악기였기 때문에
일반의 악기상점에서도 팔고 있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후 30여년이 지난 2009년,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안사람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황령산이란 곳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나는 그다지 산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황령산이란 이름만은 알고 있었지만
부산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는 산이라고 한다.
산입구에서 아스팔트도로의 양측은 모두 한 종류의 나무로만 심겨져 있다.
벛꽃나무다.
벛꽃이 한창 피는 4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하러 온다.
3년전,세상을 떠난 어머님과 함께 꽃피는 시기가 되면 매년 꽃구경하러 오곤 했다.
정상부근의 도로를 따라 가면 “벛꽃 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산에 오르면 9부능선쯤 되는 곳에서 약 4키로정도의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고층빌딩이 죽 늘어서 있는 동네,
대마도쪽으로 펼쳐지는 상쾌한 바다.그리고 부산의 명물중의 하나인
광안대교가 눈에 들어 온다.
정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차에서 내려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 멋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엿다.
멀지 않는 곳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온다.
아~~ 그것도 다름아닌 섹소폰소리다.
30여년 전에 동경했던 생각이 불현듯 떠 오른다.
안사람을 잠시 남겨두고 혼자서 살짝 소리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봉고차옆에서 왠 허술한 옷차림의 남자(A씨)가 섹소폰을 반주에 맞춰 연주하고 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몇곡인가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다.
상당한 연주력이었다.

섹소폰을 내려 놓고 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던 그에게 다가 갔다.
박수와 함께
“야~ 실력이 대단합니다~~.
섹소폰을 하신지 오래 되셨겠네요“
그러자, A씨는 겸연쩍은 듯한 웃음을 띄우며 “아닙니다.2년전부터 시작했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욱 놀랐다.
2년정도의 짧은 기간에 이정도의 멋진 연주가 가능한 것인가??
“농담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숙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A씨는 40대 초반의 남자로 회사원이 아니고 자기의 기술을 자지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습하는 시간은 충분하다고 한다.
“정말입니다. 그 대신 하루 7시간정도의 연습을 거의 2년동안 계속했습니다..
나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소에서 혼자서..“
지금 내가 돌이켜 보면 당시 2년되었다는 그의 실력은 10년도
넘게 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 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예사롭지 않는 실력이었다.
기타도 만진다고 해서,,그 때문일까? 남들보다 뛰어난 음악적감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담배를 다 피워 갈 무렵, 불쑥 내가 부탁했다.
“섹소폰을 내게 가르켜 줄 수 있느냐?”고
A씨는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으므로
악기만 구하시면 언제든지 좋읍니다.
가르켜 드리는 것은 물론, 사례비도 받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거기에 갔더니 그가 있었다.
차에서 악기를 꺼내 들고 오는 나를 보더니 A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선채
꼼짝 않고 있다.
“정말로 사온 것입니까?”놀란 기색이 역역하게 보인다.
“소뿔도 단숨에 뺀다”솜씨좋은 선생과 멋진 경치에 둘러 쌓인 연습장. (쇠뿔도 단김에 빼라   원형)
이런 좋은 기회가 또 다시 있겠읍니까~!!“
라는 나의 말을 들으며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당신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 2년동안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같은 말을 반복해 왔지만, 누구 한사람도 당신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보며 도,레,미부터 배웠지만 누구의 도움없이 독학한다는
것은 정말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같은 사람에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켜 드리겠습니다“  (パート1)

ヒマワリ育て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7

2014年2月に6号をお届けして以来ご無沙汰となっていた「釜山サムライ」さんの新エッセイが届きました。
第七号としてお届けします。

ーヒマワリ育てー
今までやったこともない働きを余儀なくさせられるはめになった。
理由をはなせば。。。

私はアパートで犬2匹とともに住んでいる。
1匹は15歳。もう1匹は昨年親友からもらってきたかわいい犬だ。
家の外で用便をするのを身につけさせようと外へつれて行ったのが災いの元だった。
最初のころ、朝、夕方二回の散歩はそれなりによかったが
すぐ嫌気が差した。
ふだん体を動かさない私は「そうだ、、嫌だけど、これも運動だと思って我慢しよう」と
自らを慰めながら出かけたものだ。それが、はや1年となった。

今から2ヶ月前のことだ。
その日もなにげなく歩いていたらアパートの花壇や道ばたに今まで見掛けなかった
植物がきれいに植えられている。
植物の名は知れなかったが、一見、雑草ではないことは分った。
「これなんていう植物かな」。通りかかる人に聞いてみたところヒマワリだという。
「あ~そうですか。ヒマワリですか」。

このアパートに12年住んでいるがこんな風景ははじめて見たので
「誰がこれを植えたのかな。。」ちょっと首を傾げてはみたが、それはそれでおしまいであった。
そして、なにげなくその道ばたを通りすぎた。

ややあって苦労の時が迫ってきた。
他の日とおなじく犬をつれて散歩に出た。
あいにく前の晩、風が強かったのか、いくつのヒマワリの幹が折れているのが目に入った。
哀れな気持ちで周りの枝を拾って支えをして縛ってやった。

次の散歩からはヒマワリの幹のほうに自然と目が行くようになった。
腰がおれたやつらがこれからまともに生きていけるのかと思ったが
幸いによく延びていた。
日が経つにつれ背がぐんぐん延びるとともに
太ってきた幹がうつむいていた。
「このまま放置するときっと倒れるはずだ」と気づいて
散歩するたびに何本かずつ支えの棒を縛ってやった。
次の日も、また次の日も。。
支えの作業がほどんど終わったと思って
腰を伸ばしてこのかわいいやつらを微笑ましく見る。
しかし、これも束の間の喜びであつた。

その後また何日かが過ぎると今度は幼いころ立ててやった支えの丈が
短くなってしまった。
「あ~これではだめだ。もっと丈夫で長い支えを立てなければ。。」
手頃な支えの枝を再び捜しはじめた。
瞬間、ふと「なんで俺がこんなことをしなきゃならないんだ」。
ぶつぶつと悪態をつきながら汗にぬれた目で花壇の中を
きょろきょろ見回わす。
つれの犬はもう眼中にはなかった。

誰が種を蒔いたかは今もわからない。
自分が好きでやったことは最後までやってやったらよかったのに。
残念な人だ。

こうして、時は流れ、苦労のかいがあった。
ヒマワリが黄色い顔を差し出すのをみたら気持ちはよかったが
私の支えをとりつける作業は続いた。

今では延びきった背の高いのは2.5メートル。小さいのは小さい。
さまざまだ。
数えてみたらおよそ150本あまり。
決して少なくない数だった。

今年の夏、思いがけなかった出来事であったが楽しみも感じたりもした。

炎天下で作物を育てる農夫の骨折りが思い浮かぶ。
農作物を自分の子育てのようにするのがいかほどしんどいことか。。と
他人が蒔いた種と、それに後始末をつけた私。

いきなり「生みの子より育ての子」という諺が思いつき、
苦笑いがこぼれる。

私に任せられたヒマワリ育てもつつがなくやりし終えたし、
今年の秋は、わが手で直々にコスモスでも育ててみようかな~~。



「해바라기-키우기」
지금까지 해 보지 않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나는 아파트에서 개 2마리와 함께 살고있다.。
1마리는 15살이고 또 한 마리는 작년 친구에게서 얻어 온
1년6개월 된 귀여운 개다.
집밖에서 용변하는 것을 몸에 익히도록 밖에 데리고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아침, 저녁 2번의 산보는 나름대로 좋았지만
금방 실증이 났다.
평소 몸을 움직이지 않는 나는 “그래,,, 싫지마는 이것도 운동이다 생각하고 참자,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그것이 1년이 되었다.

지금부터 2개월 전의 일이다. 그날도 무심코 걷고 있는데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에서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식물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식물의 이름은 알수 없었지만, 언듯 보기에도 잡초가 아닌 것은 알았다.
“ 이게,무슨 식물이지?”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해바라기라고 한다.
“아~그렇습니까. 해바라기네요”

이 아파트에서 12년을 살고 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누가 이것을 심었지?,,,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길을 지나 다녔다.

얼마쯤 있다가 고생의 시간이 닥쳐 왔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개를 데리고 산보를 나갔다.
마침 전날 밤에 바람이 강했던지 해바라기 몇그루의 줄기가 꺾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불쌍한 마음에 주위에 있는 나무가지를 주워 지지대로 묶어 주었다.

다음 산보부터는 줄기쪽으로 자연히 눈이 가게 되었다.
허리가 부러진 녀석들이 앞으로 잘 살아 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잘 자라고 있었다.
날이 지남에 따라 키가 쭉쭉 자람과 함께
굵어진 가지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틀림없이 쓰러질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어
산보할 때 마다 몇 그루씩 지지대를 묶어 주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지지대작업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여
허리를 펴고 이 귀여운 놈들을 흐믓하게 바라 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의 즐거움이었다

그 이후, 또 몇일인가 지나자 이번에는 어릴 적에 세워 주었던 지지대의 길이가
짧게 되어 버렸다.
“아~이래서는 안된다” 좀 더 튼튼하고 긴 지지대를 세워 줘야지,,
적당한 지지대 가지를 다시 찿기 시작했다.
순간, 불쑥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만 되나”
투덜거리며 욕을 하면서, 땀에 젖은 눈으로 화단속을
두리번거리며 둘러 본다.
데리고 간 개는 이미 안중에는 없었다.

누가 씨를 뿌렸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서 한 것은
마지막까지 하면 좋았을텐데.
유감스러운 사람이다.

이렇듯 시간은 지나고,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해바라기가 노란 얼굴을 내민 것을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지지대를 세우는 일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다 자라서 키가 높은 것은 2.5미터, 작은 것은 작다.
가지각색이다.
수를 세어 봤더니 약 150그루 정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올해 여름,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사건이었지만 즐거움도, 느낀 점도 있었다.

땡볕아래에서 작물을 키우는 농부의 수고가 떠오른다.
농작물을 자신의 아이키우는 것처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것인가.
남이 뿌린 씨와, 뒷처리를 한 나.

갑자기 “나은 자식보다 키운 자식이 정이 깊다” 라는
말이 생각나서 쓴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내맡겨진 해바라기-키우기도 멋지게 해냈으니,,
올해 가을에는 내손으로 직접 코스모스-라도 키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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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フィール

treenamu

Author:treenamu
韓国在住の日本人で、山歩きやサッカー、リフティングなどが好きです。小説・随筆なども書いてます。鴨長明、ヘッセ、バルザック、モーム、チャンドラーなどが好きです。スローライフがモットー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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