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からアンニョン

日々の思いや韓流情報などをエッセイ風に書きます。韓国からの発信です。

日本の町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6

釜山サムライさんは韓国の方でわが友。
居場所は釜山。
美しいヘウンデ(海雲臺)に暮らしながら、
日本語や日本のことについて、独自のエッセイを展開中。
今回はその第六号です。お楽しみください。


<日本の町>

暑い太陽が照りつける真夏の午後。
ここは釜山。

車に乗って、海雲台(ヘウンデ)から東海南部線に沿ってつづく海岸道路を走る。
海岸を挟んで走るコースの真っ青な海の風景が、いかに美しいことか。
左側は鬱蒼たる緑色の山林、右側は海。このコースは韓国でも指折りの絶景だ。
海岸にまき散されている小さい岩、大きい岩たち。
彼らはその場が自分の場でもあるかのように、でんと据えている。

自然も自らこのように自分をうつくしく表わそうとする姿が、まさに見応えがある。
万物の霊長といわれる人間も、自分のみならず身の回りもきれいにしていけば、
自然のように香りを発散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私は幼いころからの性格というか、、まあ、今もおなじですけど、、
軍隊での生活がもしかすると私には合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きました。
軍隊というところは、回りのすべてがきちんと整理整頓されているのが性に合っています。
身の回りのものが散らかっていたら、なんとなく精神までも散らかっているようです。

先だっても書きましたが、家の娘が日本で留学していたころ、
娘が自炊するところ(神奈川県川崎市麻生区)で何日間か泊まったことがあります。

娘が学校へ行った後、町の見物でもしようと、近所に出かけました。
家の前にある踏み切りを通り過ぎ、もうすこし遡って行くと田舎の趣きが感じられる風景が
広がっていました。

土の色が黒色で、滋養分が十分含まれた土地のように見受けられました。
何をするところかは分からないけど、
本当にきれいに手入れされているのを見て微笑ましい気持になりました。
私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けどね。。。

家のほうに戻って来ながら、ちらっと振り返って見たら

○○土地模範地区"

という看板が見えました。
家の回りをぶらぶらと歩いていると
幅が8~10メートルくらいの河川(鶴川)がありました。

しばらく立って見下ろしていたら、何かが動いているのが見えたので、
じっと見つめていたら黒色の大きな鯉でした。
その一帯へ目をまわしたら、これが、なんと、1~2匹ではなく数十匹いたんです。

"なんだ、これ、鯉がなぜここにいる?"。

しばらくあれこれ考えているとふとこんな考えが浮かびました。

"あ~これは河川を浄化するため鯉を放流したのであろう"と。

観賞用として、また河川を浄化するため、一石二鳥の効果を出す、
まさにすばらしい構想だという思いがふっと湧きました。

ところが、これが韓国だったらあの鯉。真夜中にきっと悲惨な目にあうだろうな。。^^

あたりを一回りしてから家へ向っててくてく歩いていた時、
前から誰かが周囲をきょろきょろ見回しながら、
何かを拾ってはビニール袋に入れているのが目に入りました。

それで、私のほうに来るまでしばし待ちました。
近くまで来ました。見ると60代後半のお婆さんでした。

「お婆さん、今、何を拾っていられますか」って聞いてみたところ、

「うん、何でもないわよ。私、この町に住んでいるの。

毎日、運動がてら歩いてるんだけど、ゴミが見えれば拾うんですよ。」と答え、
またそのまま歩いて行きました。

いまでもあの時、にこにこ微笑みをうかべたあのお婆さんのことが思い出されます。

そして、一般の住宅を見るとほどんどの住宅が一階建ての家で、
白い木柵で囲まれていて、
だいたい何本かの木が植えられていて見た感じもとてもいいものでした。
その後でも何か所かの町をぶらぶら見て回りましたが、
全体的に落ち着いていてきれいなのが、日本の町だなという印象を受けました。
人と永遠にともにある自然を大事にするのは、言うまでもなく当然のことです。

"流れる小川から石を一つ取り除ければ、その小川はすでに生命を失ったものだ"

以前どこかで読んだ本の言葉が、もう一度思い浮かびます。

ところで、あの時出会った名もない鯉たち。今も元気でいるかな~~^^


<일본 마을>
뜨거운 태양이 내려 쬐는 한여름의 오후.
여기는 부산입니다. 차를 타고 해운대에서 동해남부선을 따라 연결되어 있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해안을 끼고 달리는 코스로 시퍼런 바다의 풍경이 정말로 아름답다.
좌측은 짙은 녹색의 산림, 우측은 바다. 이 코스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입니다.
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고 큰 바위도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양 떡 하고 자리잡고 있다.

자연도 스스로 이 처럼 자신을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이 정말로 보기에도 좋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를 깨끗하게 하면 자연처럼
향기을 내는 것이 가능치 않을까 하고 생각 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성격이라고 할까..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군대에서의 생활이 어쩌면 나에게 맞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주위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주위의 것들이 흐트러져 있으면 왠지 모르게 정신 마저도 흩트러져 있는것 같습니다..

일전에도 적었습니다만 우리집 딸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을때 자취하는 곳에서
(가나가와현,가와사키시,아사오구)
며칠간 머무른 일이 있습니다.

딸이 학교에 간후 집 근처로 마을 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집 앞에 있는 건널목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면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땅의 색깔이 검은색으로 자양분이 충분히 함유된 땅으로 보여졌습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깨끗하게 손질을 한 것을 보고 흐뭇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내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집쪽으로 내려오면서 힐끗 뒤돌아 봤더니 “00토지 시범지구”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집 주위를 어슬렁 거리고 걷고 있었더니 폭이 8~10미터 정도의 하천(쯔루가와)이 있었습니다.
잠시 서서 밑을 내려다 봤더니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어서
응시하였더니 검은색의 큰 잉어였습니다.

그 주위로 눈을 돌렸더니, 이것이 말입니다... 1~2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잉어가 왜 여기에 있지?” 한참동안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건 하천을 정화시키기 위해 잉어를 방류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관상용으로,그리고 하천을 정화시키기 위한,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정말로 훌륭한 구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이 잉어.. 한밤중에 분명히 험한 꼴을 당했겠지~^^

한번 돌아보고 나서 집으로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을때 앞에서 누군가가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 뭔가를 주워서 비닐봉투에 넣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내쪽으로 올때까지 잠시 기다렸습니다.

가깝게 온 사람을 봤더니 60대 후반에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줍고 계셨습니까? ”라고 물어 봤더니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이 동네에 살고 있어요...

매일 운동을 겸해서 걷고 있는데 쓰레기가 보이면 줍습니다.“ 라고
대답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생글생글 미소를 보였던 그 할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일반의 주택을 보면 거의 모든 주택이 1층의 집으로 하얀 나무 울타리로 둘러 싸여있고,
대부분 몇그루의 나무가 심겨져 있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그 후에도 몇군데의 마을을 돌아 보았읍니다만,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깨끗한 것이 일본의 마을이라고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는 자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흐르는 개울에서 돌을 치워 버리면, 그 개울은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전에 읽은 적이 있는 책에서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그때 마주쳤던 이름도 모를 잉어는 지금도 건강히 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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礼を尽くす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5

釜山サムライさんのエッセイ第五号です。



<礼を尽くす>

今から10年前のこと。
ソウルの江南(ガンナム)駅近くにある時事日語社の塾へ通ったことがあります。
日本語フリートーキングの勉強のためでした。

その当時、田中という担当先生がいられましたが、
お年は65才くらいのおとなしいジェントルマで今もはっきり覚えています。

クラスは6~7名くらいですが、
先生はいつも学生らに自由に話せる機会をたくさんくださいました。

私は当時ほどんど50才で、若い人といっしょに勉強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学生の中では日本で生活して戻ってきた人もいたし、
日本の大学へ進学するため勉強する女子高校生も何名かいました。
皆の会話実力は相当なものでした。私はビリ。。。

けれども、勉強するのに年をとったからといって恥ずかしいとは思ったことは
一度もありませんせした。
私が好きで選択したことですからね。

一時間半くらいの授業が終わったら、いつも何か物足りない気がして先生に
"先生、ちょっとお暇ありましたら、、、"と
(フリートーキングの延長を)頼んだものでした。

振り返れば、当時は、、、あ、今も同じですが、
実力がないので、何とかして相手の言葉を聞き取り、
また私の話を聴いてくれる誰かがい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

ありがたいことに、先生は時間を惜しみなく作ってくれました。
江南駅近くの居酒屋で、お酒を飲みながらいろんな話をしました。
こうした機会が何回もありました。

楽しい時間を過した後、
別れる時間になって江南駅でそれぞれの行き先へ向かおうとして
別れの挨拶を交わすところでした。
切符の売り場の前でいきなり先生が私に挨拶をしました。
"腰を90度に曲げて"。

映画とかで見たことのある場面が、、、ここで、、、。

私はびっくりしたあまり、つい動転してしまいました。
人の込んでいるところで、
年上の人が年下の人にあのように丁重に挨拶するのを見ていた人々は、
さぞ驚いたにちがいないと思いました。

私は、3年前旅立った私の父から仕付けられたことが今も身についています。
父は青年期から日本の師匠の下で柔道を習ったため、選手としての礼儀のみならず
日常生活でも人に礼を尽くすのは、当然という心構えの人でした。

"礼というのは、いくら尽くしても尽くし過ぎることはない"

こういう父から躾をうけた私ですので、
年上の人が年下の私に丁重に挨拶するなんてことは、
私には到底ありえない出来事だったんです。

今頃はほぼ80余歳の高齢になったと思われる田中先生ですが、
どこにおられても、元気で暮らしてらっしゃることを祈ってやみません~~~。


<筆者の解説>
韓国はアジア諸国の中でも礼節、礼儀の正しさで有名ですね。年上の人に対する態度やお年よりに対する態度などは、ほんとうに丁重です。韓国で生活した人でないとちょっとわからないかもしれません。自分よりも年上の先生が、学生である自分に頭を下げて丁寧に挨拶した瞬間、作者である釜山サムライさんは、「とんでもないことだ」と感じ、どうしていいかわからない状況に遭遇することになったわけですね。
韓国の礼儀も有名ですが、日本もどうしてどうして負けていません。「躾」という漢字をご覧下さい。この漢字が存在すること自体すごいことなんです。韓国語ではこれは「家庭教育」くらいにしか言うことができませんが、日本語は「躾」という漢字が存在する。残念ながら現代の日本はこの躾のない人間があふれているようですが、本来は躾という漢字(身を美しく保つ。国字。)があるくらい、礼儀、礼節には篤い国民性なんですよね、この瑞穂の国は。 



[한국어 원문]
제목 "예의를 다하다"
지금부터 10년전의 일로서 서울의 강남역 근처에 있는 시사일본어 학원에
다닌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어 프리토킹,크라스였습니다.

그 당시 “다나까”라는 담당 선생이 계셨습니다. 나이는 65세 정도 이셨고
점잖은 젠틀맨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클라스는 6~7명 정도였지만 선생은 언제나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말할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주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거의 50살로 젊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일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하는 여자 고교생도 몇명인가 있었습니다.

모두의 대화실력이 상당했지요. 나는 꼴찌...
그래도 공부하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부끄럽다고 생각 한 일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었으니까요.
한시간 반 정도의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선생에게

“선생님, 잠깐 시간이 있으시면...”

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뒤돌아보면 당시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부족한 실력이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의 말을 알아 듣고
나의 말을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선생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어 주셨습니다.
강남역근처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몇 번인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헤어질 시간이 되어 강남역에서 각자의 행선지로
가려고 인사를 나눌 때 였습니다.

매표소 앞에서 갑자기 선생이 나에게 인사를 “허리를 90도까지 숙여 인사”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화에서나 본 일이 있던 장면이...

나는 놀래서 그만 당황해 버렸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연상의 사람이 연하의 사람에게
저토록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필시 놀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로부터 가정교육을 받았던 것이
지금도 몸에 배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청년기부터 일본인 사범의 지도로 유도를 배웠기 때문에,
선수로서의 예의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사람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였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예의는 아무리 지켜도 지나치지 않다”

이와 같은 아버지로부터 가정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연상의 사람이 연하의 사람인 나에게 정중한 인사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쯤 거의 80여생의 고령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다나까”선생 이지만,
어디에 계셔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相手の国をよく知るのは大切なこと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4

釜山サムライさんのエッセイ第四号です。
ある真夏の日の出来事。蝉しぐれが聞こえてきそうです。


<相手の国をよく知るのは大切なこと>
2006年、セミしぐれのはげしい鳴き音が聞こえてくる真夏のある日。
大阪へ向かうペンスタ-号に身を預けました。

当時、日本で勉強していたうちの娘に会うために三回くらいの日本行はありましたが、
今度は他の目的をもってむかいました。
偶然サイトで知り合った行商人の若者たち(日本へしばしば行ったり来たりしている)
と一緒に行くことにしたのです。

現地に着くやいなや若者たちは大阪のデパートへマーケッティング調査やらなにやらで
どやどやと出かけていってしまいました。
私は韓国から出発する前、チームのリーダーに「私は自由に行動する」ということを
前もって了解を取っていました。

皆が立ち去ったあとで近所で自伝車を借り、大阪市役所へ向かいました。
市役所で係りの人に

「こちらは韓国語を教える機関とか習いたい日本の方はいらっしゃいませんか」

と聞いてみました。担当者は

「そういうことはこちらでもやってますよ。ボランティアでやってるんですけど、、、
今は教える先生もいらっしゃるのでちょっと困るかも~~~」って。

それで、「あ~そうでしたら他のところでもいいので紹介していただけませんでしょうか」
再びお願いを申し上げたところ、私設の塾を住所とともに紹介してもらえました。

その塾は市役所から少し離れたところでした。
また自伝車に乗って汗たらたら流しながら行くと、その塾が目に入りました。
院長に会い、話をしたら「こちらは学生数も少ないし報酬も多くありません。
それよりもまず長期滞在のビザが要りますが。。それができますか」って。

この言葉を聞いて、ちょっとまごついてしまいました。

"あ~そうだ。長期滞在は無理だ。"

で、やむなくその場はあきらめるしかなかったのです。

私がこういうことをしたのには理由がありました。

今はこのサイトの運営者でいらっしゃるK先生(当時中央大学で)が教えておられた
科目を習う学生として勉強していたころです。

勉強していた途中でふっと思いついたことがありました。

"あの先生、すばらしいな。自分の国の言葉や文化などを他国の人々に伝える。
これこそ偉大で、かつ意味深いことではないか"と思ったのです。

"そうだ、私ももっと勉強して言葉が通じるようになったら
逆に日本の方を相手に韓国を知らせることができればいいじゃないか"という
心構えで勉強に臨みました。

こちら韓国では日本について知っている人はずいぶんいますけど、
日本は残念ながらもそうではないという世論調査を見たこともあります。
これから21世紀は東北アジアが世界を主導していくことは周知の事実。
韓国、日本、中国は歴史的に見るとき、今も未来も切っても切れない関係ですよね。

未来志向的な関係を図るうえで、相手の国をよく知るのは大切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か。
一国の指導者として他国を訪問してその国の言葉で挨拶のみならず、
演説までもできればいかにも深い感銘を与えるか。。。
それこそ"錦上に花を添え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か。

知り合って尊敬しあい、理解しあえば
両国にとって外交問題はあまり難しいことではなかろうと思います。

まあ~話がちょっと外れてしまいました。なにどぞ勘弁してください。

かくして日本での私の目的は叶わなかったけれども、
それにしても私にとっては意味ぶかかったあの真夏の何日間かの出来事でした。


<筆者の解説>
「錦上に花を添える」という難しい表現があります。「きんじょうにはなをそえる」で、「いいことの上にさらにいいことを付け加える」という意味ですね。どっかで見たことはありますが、パッと出てくる句ではないですよね。(わたしだけかな?). こういう高尚な表現をたくさん内蔵している釜山サムライさん、うらやましいです。


[상대국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한 것]
2006년,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들려 오던 한 여름의 어느 날.
오사카로 향하는 펜스타호에 몸을 실었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던 우리 딸을 만나기 위해 3회정도 일본행은 있었지만은
이번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향했다.
우연히 사이트에서 알게 된 젊은 행상인(일본에 자주 갔다 왔다함)과 같이 였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젊은 사람들은 오사카데파트의 마케팅조사니 뭐니 해서
우르르 몰려 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팀의 리더에게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나는 자유롭게 행동 하겠다.” 라고
미리 양해를 받아 두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간 뒤에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려 오사카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시청에서 담당자에게
“여기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이나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분은 안계십니까?” 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담당자는 “ 그런 것은 여기서도 하고 있습니다, 봉사로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가르치는 선생님도 계시기 때문에 조금 곤란 합니다.“ 라고..
그래서 “그러시다면 다른 곳도 괜찮으니까 소개 해 줄수 있겠습니까?“ 라고
재차 부탁을 드렸더니 사설인 학원을 주소와 함께 소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학원은 시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또 자전거를 타거 땀을 줄줄 흘려가면서 갔더니 그 학원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원장을 만나서 얘기를 했더니 “여기는 학생 수도 적고 보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것 보다도 먼저 장기체류 비자가 필요 합니다만.. 그것이 가능합니까? “
이 말을 들으니 잠깐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아~~장기체류는 무리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것을 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사이트의 운영자로 계시는 K선생님이 (중대에서) 가르치고 계셨던 과목을
배우는 학생으로써 공부 하고 있던 때 였습니다.

공부하고 있던 도중에 문득 생각이 난 것이 있었습니다.
“아...저 선생 멋지네..” 자기나라의 말이나 문화등을 외국의 사람들에게 전한다...
이것이야 말로 멋지고 의미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렇다... 나도 더 공부해서 말이 통하면,
반대로 일본사람들을 상대로 한국을 알려 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라는 마음가짐으로 공부에 임하였습니다.

이쪽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상당히 많습니다만
일본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고 하는 여론조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이제 21세기는 동북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해 가는 것은 주지의 사실。
한국,일본,중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이나 앞으로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겠지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도모 하려면 상대 나라를 잘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그 나라 말로 인사뿐만 아니라
연설까지도 가능하다면 얼마나 깊은 감명을 주겠습니까.

그것이야 말로 “금상첨화” 이지 않겠습니까 .

서로 알고 존경하고 이해하면
양국에 있어서 외교문제는 그다지 어려운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얘기가 잠깐 벗어나버렸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리하여, 일본에서의 나의 목적은 이루어 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는 의미가 깊었던 그 때 한 여름날 몇일간의 일이였습니다.

勉強に王道なし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3


釜山サムライさんの第三号エッセイです。
今日も日本語の勉強に対するエッセイです。
遠くを見て、ゆっくりと、というエールのように思います。

<勉強に王道なし>
ある日テレビで、山岳人のオム・ホンギル(嚴弘吉 1960年 慶南 固城生まれ)さんが
座談会に出演してお話している場面を見たことがあります。
オム・ホンギルという人は世界有数の山岳人の中の一人です。
ヒマラヤ山脈のアンナプルナ、K2峰をはじめ8000メートル級の16峰を、
全て頂上征服したそうです。座談会の途中、私を驚かせたことがありました。

その当時、凍傷にかかって切りおとした彼の足指の一部をカメラが見せてくれました。
極限状況で退くことがてきなかった心情こそ、身体の損傷にもかかわらず、
あくまで目標を成しとげようとしてできた傷跡にほかならない。
頂上征服のためにどれほど血と汗と涙の流れる訓練をしたことであろうか。

テレビを消して、ふっと私を振り返ってみました。
私も目標を決めて何か(日本語の勉強)をすることはしていますが、
あれほど激しくしたことがあったのかなと。会話を習っているときなども。

前回にもう書きましたが、一時、急に韓国語が思い出せなくなって精神病院にいくほど
頑張りましたが、オム・ホンギルさんの挑戦精神に比べたら、
私はあれほどの努力はしなかったなという心残りもありました。

私の勉強スタイルは、ふっと何かのきっかけで何日間か鍋で豆を炒めるように
大騒ぎをしてみたり、また普通に戻ったりを繰り返してきました。

皆さんはぜひ私のようになさらないで、
毎日じっくり勉強し続けるのが大切なこと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日本の諺で"商いは牛のよだれ"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よね。
パッと見には、私の気質(さむらいの魂というか^^)にはちょっと似合わないとも
思われますが、この言葉のとおりに勉強を毎日少しずつするのが
第一の方法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日々学びの喜びも感じながら。。
そうするのが良いではありませんか。

外国語は毎日使う言葉ではないので、
続けて文を読んだり言ったりしなければすぐ忘れてしまって"元の木阿弥"に
なってしまいますからね~~

勉強するのには王道はない。先生からたくさん聞いてきた言葉です。
私は今、持っている辞書はぼろぼろになっていますが、
頭の中にこれまで覚えてきた数多くの単語がそっくりそのまま残っていたら
どれほど嬉しいでしょうか。

ページを捲るごとに線を引いておいた単語らが全然思い当たらずはじめて見るような
気持ちがするときは、ため息が自然に出ます^^。

この頃はここのブログに載せた文や、他の人のブログも見ながら勉強しております。
皆さんはどう勉強しておられるか気になるところです。

とにかく、外国語の勉強は早い道、近道はけっしてないので、
こつこつと前に向かって進んでいきましょう~~~。



< 한국어 원문 >
어느 날 TV에서 산악인 엄홍길씨가 출연하여 좌담회를 하는 장면을 본 일이 있습니다.
엄홍길(1960년.경남 고성출생)이라는 사람은 산악인으로써
세계의 유수한 산악인 중의한 사람입니다.
히말리야산맥의 안나프루나. K2봉을 비롯해 8000m 16좌까지 빠짐없이 정상정복을했다고 합니다.
자담회를 하는 도중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동상에 걸려 절단한 그의 발가락의 일부를 카메라가 보여 주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물러 설수 없었던 심정인 만큼 신체의 손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목표를 달성하려다 생긴 상흔임이 틀림없겠지요.
정상정복을 위하여 얼마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훈련을 했을까.

TV를 끄고 문득 나를 돌아 보게 되었다.
나도 목표를 정하고 무언가를(일본어공부)하기는 하고 있지만
저 정도로 치열하게 한 일이 있었던가..하고 돌이켜보면 회화를 배우면서..

전회에도 이미 썼습니다만 갑자기 한국어가 생각이 안나서
정신병원에 갈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만. 엄홍길씨의 도전정신에 비교하면
나는 저 정도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나처럼 문득 무언가를 계기로 몇일간 냄비에 콩볶듯이 소란을 떤 일이 반복되어 왔습니다만
여러분은 부디 저처럼 하지마시고 ..
매일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본속담에 “영업은 소의 침처럼”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득 보면 나의 성격(사무라이 정신^)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이 말처럼 공부를 매일 조금씩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배움의 기쁨도 느끼면서.. 그렇게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외국어는 매일 사용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읽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려“도로아미타불”이 되겠지요~~ 

공부에는 왕도는 없다,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말입니다.

나는 지금 갖고 있는 사전이 너덜너덜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머리 속에 그동안 외어온 수많은 단어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선을 그어놓은 단어들이 어색하게 보여질 때는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요즘은 여기 브로그에 실린 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브로그도 보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외국어 공부는 빠른길은 절대 없기 때문에 꾸준히 앞을 향해서 갑시다~~

今日も勉強、頑張ってください~~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2

釜山サムライさんの第二号エッセイです。
勉強に対する集中力が見て取れます。
すごい集中力で勉強してたんですね。感心しました。
韓国語を勉強している日本の方へのエールとも思えます。


<今日も勉強、頑張ってください>
日本語の勉強をはじめて三年くらい過ぎたころのことかな。
勉強にすっかり嵌まっていたからか、それに関しておもしろいエピソードもありました。
今日の文章はそのおもしろい話の中の一つです。

私は自分が好きな何かをしようと一度決めたら、初志一貫というかたぶんそうする傾向があるんです。勉強に夢中になってからは、家族そろってご飯を食べるときもボンヤリとご飯を食べているばかりなんです。
妻から"口を閉じて何してるの"って言われても。。

しかし頭の中ではお膳にのせたすべてのものを日本語で思い浮かべているのです。運転する時も同じよう。。何かを主題として一人でしゃべるのです。すなわち、一人で会話の練習をするわけです。

そんな中、大統領選挙の時のことでした。
寝ようとして目を閉じたけど。。私が大統領候補になって大衆に向かって素晴らしい演説をや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もちろん、私はべらべらまくしたてていたと思いますが。。。^^)

うまく進む演説の途中、急に思い浮かばない単語があれば即辞書を引きながら。。

こんなことが真夜中に何回も繰り返されたら、眠れないのは当然のことでしょう。

ある日は、毎日うちの近くにボンゴでやってくる商人がいました(新鮮野菜、魚などな、いろんなものを積んで)家の門の前で車を停めてハンドマイクを使って商売をするのです。

ところが、その日にかぎってマイクから流れてくる声がいつもの言葉ではなく、まったく違って聞こえるではありませんか。

韓国語ではなく日本語で。

何回も耳を凝らして聞いても間違いなく日本語でした。。。それで妻に頼みました。あの人、どの国の人なのかちょっと確認してきてくれって。。

我ながら呆れて、ふふんという笑いが出るのを禁じを得なかったんです。

そして、こういう症状が^^ますますひどくなって、とうとう韓国語を口にすることさえできなくなってしまったんです。これは大きな問題です。このままいったら大変なことになるぞと。精神科病院でもいって診察してもらおうか。。とも考えたことがあるくらいです。

こういう私なりの「険しい学びの道^^」というか、とにかく私なりにできるだけの努力はやってみました。
今も同じです。

これからも私が経験したおもしろい話を続けて書こうと思っています。

韓国語を習っている日本の方々が、この文章をお読みになったらどう思われるかは分かりませんが、私のようにならないようお願いいたします。^^

では、今日も勉強、頑張ってください~~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세요>
일본어를 공부한지 3년정도 지났을 때였을까..공부에 완전히 빠졌기 때문인지
그것으로 인해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그 재미있는 것 중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려고 한번 정하면
“초지일관”이라고 할까,상당히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부에 열중하고 부터는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을 때도 멍청히 밥만 먹을 뿐입니다.
아내로부터 “입 다물고 뭘 하고 있어요?” 라고 들어도...
그러나 머리 속에는 밥상에 오른 모든 것들을 일본어로 떠올리는 것입니다.
운전 할때도 똑 같습니다.무언가를 주제로 하여 혼자서 말하는 것입니다.
즉, 혼자서 회화 연습을 하는 셈입니다.
언젠가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였습니다.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내가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 대중을 향해
연설을 멋있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나는 잘한다고 생각 하지만..) 
잘 진행하던 연설도중에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즉시 찾으면서 ..

이런 일이 한밤중에 몇 번이나 반복 된다면 잠 잘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이겠지요.
어떤 날은 매일 집 근처에 차를 가지고 오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싱싱한 야채,생선 등 여러 가지를)집 문앞에 차를 세우고 핸드마이크를 사용해서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여느때의 말과는 달리 전혀 다르게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몇 번이나 귀를 귀울이고 들어봐도 틀림없이 일본어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했습니다.
저 사람 어느나라 사람인가 알아보라고...
내가 생각해도 기가차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증상이 점점 심하게 되어, 아예 한국어를 말하는 것 조차 안되게 된 것입니다.

이건 큰 문제이겠지요.
이렇게 하고 있으면 큰 일이 분명히 일어 날 것이라고 생각해 “정신과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까” 라고
생각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의 "험한 배움의 길"^^ 이라고 할까..
어쨌든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해 봤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내가 경험한 재미있는 얘기를 계속해서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일본의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어떻게 생각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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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namu

Author:treenamu
韓国在住の日本人で、山歩きやサッカー、リフティングなどが好きです。小説・随筆なども書いてます。鴨長明、ヘッセ、バルザック、モーム、チャンドラーなどが好きです。スローライフがモットー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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